상> 팔려나가는 탈북 여성들
하> 무국적 자녀들 수천여명
목숨 걸고 탈출한 탈북민들이 대륙을 떠돌며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대기근으로 아사자가 속출했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20만명에 달하기도 했던 탈북민 숫자는 이제 많이 줄었다지만 여전히 많은 탈북민들이 중국, 몽고, 베트남 등지에서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돼 중국인과 강제결혼 생활을 했던 탈북 여성 장소연(44)씨를 통해 중국을 떠도는 탈북민들, 특히 탈북 여성들의 참담한 인권유린 실상을 들여다봤다.
“돼지 한 마리 값에도 팔려나갑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아사한 시신들이 거리에 나뒹굴던 고향 함흥을 떠나 북한을 탈출한 1999년 4월 3일. 장소연씨는 이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북한 군인 출신이었던 아버지와 영영 이별한 날이기도 했지만, 북한을 떠난 그녀에게는 또 다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장씨는 “당시 함흥에는 거리마다 굶어죽은 시신들이 널려 있었고, 시내는 온통 시체 썩는 냄새와 시체 태우는 냄새가 가득했다”며 “하지만, 함흥을 떠나 도착한 중국에서는 이보다 더한 참혹한 시간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친척집에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간 용정의 한 낯선 거리에서 장씨는 중국 인신매매단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길을 막아선 남자들에 의해 다짜고짜 택시에 강제로 태워진 그녀가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며칠 만에 도착한 곳은 중국 내륙의 오지 하북성 관송현의 한 산골 마을이었다. 인신매매단에 강제 납치돼 오지로 끌려간 그곳에서 그녀는 한 중국 농부와 강제로 결혼을 당해야 했다.
장씨는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이 농부에게 장씨가 팔려 온 값은 중국 돈 2만위안(약 300달러)이었다. 당시 돼지 한 마리 가격이 3,000위안. 24살이었던 장씨를 인신매매한 댓가는 돼지 7마리 값이었던 셈이다.
장씨는 “당시 중국에서 조선 여자들은 돼지 한 마리, 두 마리 이렇게 은어로 부르면서 값을 매기곤 했다고 들었다”며 “돼지 한 마리 값인 단돈 3,000위안에 팔리는 탈북 여성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난 때문에 또는 장애 때문에 결혼을 하기 힘든 중국의 농촌 남성들을 상대로 탈북 여성들을 사고파는 인신매매단이 중국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참담한 것은 많은 탈북 여성들이 북한 강제 송환보다는 차라리 팔려나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
장씨는 “내가 끌려간 하북성 관송현에서만 나처럼 인신매매로 끌려온 북한 여성들만 수백여명이 살고 있었다” 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연명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골 오지에만 인신매매 여성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국 도시들에는 수많은 탈북여성들이 성매매 업소나 음란사이트 운영 범죄조직에 감금된 채 성착취를 당하는 처참한 현실에 놓여 있다. 장씨는 “나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라 2년 만에 탈출해 한국으로 올 수 있었지만 여전히 중국 도시들에는 노래방이나 성매매 업소들에서 강제로 성착취를 당하는 북한 여성들이 적지 않고, 쪽방에 갇혀 음란 사이트의 화상채팅에 내몰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2년간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다 그때 마다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혀 끌려가야 했던 장씨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5년 미국 대사관을 거쳐 가까스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한국서 대학을 마친 장씨는 지난 2011년 캐나다로 이주해 지금은 ‘자유 아시아 방송’ 캐나다 특파원으로 일하며 탈북자 지원단체 ‘크로싱앤케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김상목 기자>